이호선의 [가족의 심리학] (7)

[정신의학신문 : 서대문 봄 정신과, 이호선 전문의] 

 

 

아들은 남편의 대체재가 아니다

- 문제는 자식에게 있는 게 아니라 부부관계에 있다

텔레비전에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소위 막장 드라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며느리를 괴롭히면서 아들 편만 드는 독한 시어머니다. 며느리에게는 악마 같은 존재로 그려지지만, 아들에게는 선하기 이를 데 없는 천사 같은 존재다. 아들에 대한 집착이 강하면 강할수록 며느리를 더욱 못살게 닦달한다. 왜 이러는 걸까? 아들은 자기 소유물이자 일심동체 관계인 반면, 며느리는 아들과 자신 사이를 갈라놓는 훼방꾼이자 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여성 중에는 평소 남편과의 사이가 원만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남편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을 아들에게서 받으려 하고, 남편이 충족시켜주지 못한 관심을 아들로부터 확인하려 든다. 무뚝뚝하고 자상하지 못한 남편 때문에 무시당하고 홀대받으며 사느라 숨겨온 자신의 여성성을 다정다감하고 살가운 아들에게서 보상받고자 한다. 남편이 폭력적이거나 경제적으로 무책임할 때 혹은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웠을 때도 이로 인해 상처 받고 피해당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아들로 인해 상쇄하고 보충하고자 점점 더 아들에 대한 애착이 강해진다.

 

장성한 아들을 둔 여성만 이러는 건 아니다. 어린 아들을 키우는 젊은 엄마도 마찬가지다. 하루는 30대 중반의 여성이 수심 가득한 얼굴로 진료실에 들어섰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이 엄마 마음을 너무 몰라주고 자기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아 견딜 수 없다고 했다.

 

“아들 하나만 바라보고 사는데…… 내가 남들 못지않게 키우려고 온갖 뒷바라지를 다 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엄마 마음을 몰라주고 자기 뜻대로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아드님이 아직 어린데 뭘 그렇게 엄마 마음을 몰라준다는 겁니까?”

 

“절 닮아서 아이가 조숙해요. 어리지 않다고요. 유치원 가 있을 때 빼고는 저랑 같이 놀고 밥 먹고 목욕하고 이야기하자고 해놓고선 어느새 보면 친구들하고 놀려고 놀이터에 가 있는 거예요. 심지어 여자아이와 놀 때도 있어요. 벌써 여자 친구라니 기가 막혀서 원…….”

 

“남편 분하고는 의논해 보셨나요?”

 

“그 사람은 없는 거나 매한가지예요. 새벽에 나갔다가 자정 지나서 인사불성이 되어 들어오니까요. 그렇다고 돈을 많이 벌어다 주는 것도 아니고…… 아들에게도 별로 관심이 없어요. 얼굴 볼 시간도 없죠. 드릴 말씀은 아니지만, 아들만 아니면 벌써 이혼했을 거예요.”

사진_freepik
사진_freepik

 

남편과의 사이에 애정이 점점 식어가면서 대화가 잘되지 않으니까 이 여성은 하나뿐인 아들에게 모든 사랑과 관심과 희망을 쏟아부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아들은 자기 나이에 맞게 유치원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사회성을 발달시켜 나가는 중인데, 오히려 엄마가 지나치게 아들을 구속하고 독점하려 하는 탓에 아들의 성장에 많은 지장을 초래하고 있는 셈이었다.

이렇듯 부모는 자녀를 독립된 인격체나 정서적으로 분리된 하나의 객체로 바라보기가 참 어렵다. 부모가 자신과 자녀를 객관적으로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건강하지 못한 애착 관계가 형성된다. 자녀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독립하기 위해서는 부모와 자녀 사이에 적절한 경계가 필요하다. 엄마의 품속에서 안전한 것, 편안한 것, 풍요로운 것만 경험한다면 가족 외부에 있는 사회나 현실을 제대로 경험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자녀는 엄마 품속에서 자기 정체성과 자존감을 잃은 채 불안한 상태로 성장할 것이다. 경계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경계 밖의 것을 경험해 봐야 한다. 그것은 위험한 것, 무서운 것 또는 사랑의 결핍일 수 있다.

 

엄마와 아이 사이에 경계가 생긴다면 다음에는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왜 아이는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을지를 궁금해할까? 아이는 출산의 과정보다 자신이 태어난 이유에 대해서 알고 싶을 것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아이는 부모가 원해서 태어난다’라는 것이다. 아이의 탄생은 부모의 간절한 바람에서 시작됨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부모 중 아빠는 아이에게 어떤 존재일까? 아빠는 아이가 엄마 다음으로 세상에서 만나게 되는 두 번째 사람일 것이다. 아빠의 존재는 엄마의 소개로 정의된다. 엄마가 아빠에게 대하는 태도로 아이들은 아빠를 인식하게 된다. 엄마는 무심결에 아빠에 대한 불만을 아이에게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네 아빠는 왜 이리 말을 안 듣는지 모르겠다.”

“주말에 종일 텔레비전만 보고 있으니 정말 미워 죽겠어. 애들하고 좀 놀아주지…….”

 

별 뜻 없이 하는 말이지만, 아이에게 아빠에 대한 나쁜 판단을 들려주는 것이다.

 

“아빠가 엄마 말을 좀 더 잘 들어주면 좋겠어.”

“아빠가 주말에 텔레비전만 보지 말고 우리랑 같이 놀아주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부정적인 감정은 빼고 아빠가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이라고 알려주는 건 어떨까?

 

위 사례에서 보이는 문제의 원인은 아들 바라기인 시어머니나 젊은 엄마가 아니라 부부 사이에 있다. 부부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기에 남편에게서 받아야 할 사랑과 관심 그리고 그로 인해 배우자를 통해 느껴야 할 만족과 행복을 아들에게서 찾게 되는 것이다. 아들은 내가 낳았을망정 내 소유물이나 남편의 대체재가 아니다. 결국 행복은 부부관계에서 나온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데이비드 브룩스는 최근에 펴낸 『두 번째 산(원제: The Second Mountain)』이라는 책에서 결혼에 관해 설명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생후 18개월 무렵에 자기를 돌보는 사람과 안정된 애착 관계를 형성한 사람은 안정적인 인간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방법에 대한 모델을 머릿속에 가지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 앞에 서면 심박수가 줄어들고 호흡이 느려진다. 이런 상태를 정상으로 느끼기 때문에 긴장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해지는 것이다. 유아기 때 불안한 애착 관계를 경험한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할 때 제대로 긴장을 풀지 못한다. 이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모델은 사랑하는 사람이 곧 떠날 것이라고 속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박수가 늘어나고 호흡이 빨라진다. 어릴 때 회피성 애착 패턴을 경험한 사람은(자기를 돌보는 사람에게 어떤 신호를 보냈지만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한 사람) 아예 관계 자체를 차단한다. 이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모델은 내가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무응답에 상처 받을 일도 없을 것이라고 속삭이기 때문이다.”

 

가정의 중심은 부부다. 부부 사이에 생긴 문제를 부부가 풀지 않고 외면한 채 자식을 통해 이를 보상받으려 할 때 부부 문제는 자녀들에게까지 대물림된다. 안정된 애착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탓에 성인이 되어서도 제대로 사랑할 줄 모르는 어른이 될 확률이 높아진다.

 

※ 본 기사에 등장하는 사례는 이해를 돕기 위해 가공된 것으로 실제 사례가 아닙니다.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한양대병원 외래교수, 한양대구리병원 임상강사
(전)성안드레아병원 진료과장, 구리시 치매안심센터 자문의, 저서 <가족의 심리학>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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