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보다 진심 (4)

[정신의학신문 : 김재원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당신은 예민한가요, 섬세한가요?

_ 예민 vs 섬세

 

의과대학과 정신과 수련 동기인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전홍진 교수의 저서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글항아리, 2020)이 베스트셀러로 주목받았다. 서로 다른 병원에서 일하고 있고 진료하는 환자의 연령층은 다르지만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서 연구년을 보낸 우리들은 어떻게 하다 보니 우울증과 자살 위험에 있는 사람들을 돌본다는 공통점을 갖게 되었다.

그의 책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그만큼 자신이 예민하다고 생각하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다. 책에서는 ‘예민’을 이렇게 정의한다.

‘예민하다’는 영어로 ‘sensitive’인데, 외부 자극에 민감하다는 뜻이다.‘Highly sensitive persons (HSP)’은 직역하면 매우 예민한 사람들인데 의학적인 용어나 질병명은 아니다. 2006년 에런 박사가 제시한 개념으로 ‘외부 자극의 미묘한 차이를 인식하고 자극적인 환경에 쉽게 압도당하는 민감한 신경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_ P. 17

 

한편 《예민한 게 아니라 섬세한 겁니다》(다카다 아키카즈 지음, 신찬 옮김, 매일경제신문사, 2018)라는 제목의 책에 따르면 ‘예민하다’의 뜻으로만 알았던 ‘sensitive’에는 섬세한, 주의 깊은, 배려심 깊은 등의 뜻도 담겨 있다고 한다. 실제로 ‘sensitive’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남의 기분을 헤아리는 데) 세심한’, ‘(예술적으로) 감성 있는’과 같은 정의도 포함된다.

섬세와 예민의 차이는 무엇일까? 영어로 같은 걸 보면 종이 한 장 차이일 것 같은데 단순히 예민은 부정의 의미, 섬세는 긍정의 의미로 사용할까? 그렇다면 예민함을 어떻게 하면 섬세함으로 바꿀 수 있을까? ‘우리 가족은 예민한 아빠를 피곤해한다’고 어느 책에 썼는데 이를 ‘우리 가족은 섬세한 아빠를 좋아한다’로 바꿀 수는 없을까?

사진_freepik
사진_freepik

 

사실 나는 가족 내에서는 예민한 아빠로 구박받지만 선후배나 동료 사이에서는 섬세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아니 이들도 내가 예민하다고 생각하지만 내 앞에서 그냥 좋은 쪽으로 말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그래도 한 번은 선배가 ‘섬세하고 정확하다’고 나를 평가했는데 내가 들었던 그 어떤 말 보다 최고의 칭찬으로 여겼다.

섬세함을 갖춘 것은 축복이자 짐이 될 수 있다. 섬세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기분과 정서, 생각과 행동의 미묘한 변화를 잘 포착한다. 섬세함은 정신과 의사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기도 하다. 정신 치료 시간 중 환자의 미세한 표정 변화, 언어와 비언어의 불일치 verbal-nonverbal discrepancy, 말의 속뜻, 의미 없어 보이는 행동의 속내 등을 알아챌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말과 표정이 어울리지 않는, 언어와 비언어가 일치하지 않는 지점 — 유쾌한 이야기를 하는데 표정은 어둡거나, 슬픈 이야기를 하는데 표정은 웃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 — 에서 환자의 무의식을 엿볼 수 있다고 배워왔다. 타인을 동정하고 타인에게 공감하기 위해서는 섬세함을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

섬세한 사람은 자신보다는 타인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내 기분보다는 상대방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더 신경 쓴다. 섬세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고민을 상담해주고 아픔을 치유해주는 소위 상담자나 치료자의 역할을 하고 있을 때가 많다.

섬세 와 예민이 차이가 나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예민한 사람도 타인을 많이 신경 쓰고 남의 기분을 잘 알아차리지만 타인보다는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상대방보다는 나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내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예민이라는 촉수를 동원한다. 내가 가족에게 별일 아닌 걸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예민하게 굴었던 것도 가족을 위하고 배려한다기보다는 내 마음이 편안한 쪽으로 가족이 행동해주기를 바랐던 적이 대부분이었다.

 

또 다른 예로 예민한 사람은 타인의 부탁이나 요청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데, 이는 남을 위한 다기보다는 남에게 안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아서 수락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남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더 신경을 쓰는 것이다. 이렇듯 예민이라는 감정은 자기중심적인 얼굴을 띤다.

예민한 사람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유리 멘탈’인 경우가 많다. 깨지기 쉬운 유리처럼 타인의 시선이나 의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쉽게 상처나 충격을 받는다.

이렇듯, 섬세와 예민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 단어였다. 자기중심적인 예민과 이타주의적인 섬세, 마음의 중심이 어디로 향하는지가 둘의 차이를 구분 지을 수 있는 지점이었다. 이렇게 섬세와 예민의 차이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으니, 나의 섬세함이 예민함이 되지 않도록 이타적인 삶을 살아나가려고 노력해야겠다.

 

_ <<밥보다 진심>> 중 ‘이타적인 삶의 기로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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