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록의 [마음속 우물 하나] (14)

[정신의학신문 : 사당 숲 정신과, 최강록 전문의] 

 

“왜 이래? 오늘은 내가 낸다니까.”

“어허, 아니야. 이번에는 내가 쏠 차례야.”

음식점 계산대 앞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서로 내가 먼저 돈을 내겠다고 실랑이하는 모습은 우리 문화에서만 발견되는 독특한 풍습이기도 하다. 서열을 중시하고 체면을 따지는 유교적 관습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고, 베풀기 좋아하는 넉넉한 인심을 미덕으로 여겨 온 풍속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젊은 층에서는 여럿이 식당이나 카페를 가도 자신이 먹은 것만 계산하는 게 자연스럽지만, 장년층 이상에서는 이런 방식이 아직 익숙지 않다.

코로나 사태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된 지 오래지만, 최근에는 각종 변이 바이러스까지 기승을 부리면서 그 단계가 점점 상향되고 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는 4단계 조치는 언제 끝날지 감을 잡기도 어렵다. 이에 따라 친구나 지인을 만나 식사하고 왁자지껄 어울려 회식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누굴 만나 뭘 먹고 마신다는 게 민폐가 되어 버린 세상이다. 가족끼리 생일잔치를 하는 것도 여간 눈치 보이는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는 일이 이토록 부담스러운 시절이 올 줄 알았더라면 마음 놓고 모일 수 있었을 때 자주 자리를 마련해 후하게 인심이나 쓸 걸 하는 후회도 든다.

그러나 막상 일상이 회복되어 누구든지 자유롭게 만나 먹고 마실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어떨까? 여전히 식비나 술값을 누가 낼 것인가, 모임에서 계산은 어떻게 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될 것이다. 응당 돈 낼 사람이 정해져 있을 때, 서로 먼저 계산하겠다고 다툴 때, 자기 먹은 건 자기가 계산하는 방식이 당연시되는 자리일 때 분위기는 다를 수밖에 없다.

 

사진_freepik

 

글랜스와 허버만이라는 심리학자는 흥미로운 실험 한 가지를 실시했다. 계산 방법의 차이에 따라 모임의 참석자들이 각각 어떤 가격의 메뉴를 선택하는가를 관찰하는 실험이었다.

친구들과의 저녁 식사 자리가 마련되었다. 모임을 주선한 사람이 이런 제안을 했다.

“취향에 따라 자유롭게 시켜 먹되 식비 계산은 총액을 인원수로 나눠 분담하기로 하자.”

가격에 구애받지 말고 마음껏 먹되 계산은 똑같이 나눠서 하자는 이야기였다.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해 모두가 동의했다. 그런 다음 메뉴판을 보면서 각자 음식을 주문했다.

어떤 친구가 제일 먼저 비싼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다른 친구는 고급 해물 파스타를 먹겠다고 했다. 저렴한 샐러드나 채소 요리를 먹고 싶었던 한 친구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어차피 똑같이 나눠서 낼 건데 나만 싼 걸 먹으면 손해잖아? 그럴 순 없지.’

고민하던 그 친구 역시 비싼 요리를 시켰다. 이런 식으로 평소 자신의 취향이나 식성과 상관없이 다들 값비싼 음식을 주문했다. 균등하게 나눠서 계산하기로 한 이상 나만 저렴한 메뉴를 선택해 손해 볼 수 없다는 심리가 작동한 것이다. 당연히 그날 모임의 식비는 꽤 많이 나왔고, 참석자들은 평소보다 더 많은 금액을 지출해야 했다. 여럿이 다양한 음식을 주문해 서로 나눠 먹으면 각자 한 가지씩 시켜서 먹을 때보다 더 저렴한 비용이 나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계산 방법을 택했을 때 오히려 더 과도한 비용이 나온다는 이야기다.

무엇이 가장 합리적인가 보다 다른 사람에게 손해 보기 싫다는 마음이 앞서는 까닭이다.

이 같은 현상을 ‘뻔뻔한 저녁 식사의 딜레마(Unscrupulous Diner’s Dilemma)’라고 한다.

만약 혼자서 식사할 경우는 어떨까? 당연히 자신의 취향과 식성에 맞는 음식 가운데 더 값싼 메뉴를 선택해 돈을 절약하려고 할 것이다. 친구들과 식사할 때도 자신이 먹은 음식값을 자신이 내는 방식을 택할 경우, 역시 이성적인 선택으로 저렴한 비용을 지출할 것이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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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구체적인 실험을 한 사례도 있다.

유리 그니지, 에르난 하루비, 하다스 야페는 2004년 이스라엘 대학 캠퍼스 근처에 있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비슷한 실험을 수행했다. 이들은 각각 다른 조건의 세 가지 모임을 마련해서 모임마다 대학생 여섯 명씩 모여 식사하도록 했다. 첫 번째 조건의 참여자들은 자신이 자유롭게 주문한 음식값을 각자가 계산하도록 했고, 두 번째 조건의 참여자들은 그날 모임의 식비 총액을 나중에 여섯 명이 똑같이 나누어 내도록 했으며, 세 번째 조건의 참여자들은 연구자가 음식값을 대신 내줄 테니 돈 걱정하지 말고 마음껏 시켜 먹으라고 일러두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실험 참여자 가운데 한 사람당 가장 많은 음식값을 낸 쪽은 자신이 돈을 낼 필요가 없던 세 번째 조건의 학생들이었다. 돈 걱정 없이 마음껏 먹을 수 있으니 당연히 비싼 메뉴를 양껏 시켰을 것이다. 이것이 이들에게는 최상의 선택이었다. 다음으로 비싼 음식값을 지출한 쪽은 식비 총액을 여섯 명이 똑같이 나누어 낸 두 번째 조건의 학생들이었다. 음식값을 분담하여 저렴하게 먹으려던 의도와는 달리 각자 자신의 이익을 고려한 선택을 했기 때문에 더 비싼 식사를 하게 된 것이다.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식사한 쪽은 자신이 먹은 음식값을 자신이 계산하도록 한 첫 번째 조건의 학생들이었다. 내가 먹은 음식값을 내가 내야 하는 상황이라면 아무 눈치 보지 않고 자기가 먹고 싶은 메뉴 중 가장 부담이 적은 걸 선택했을 것이다. 앞선 실험과 결과가 대동소이하다. ‘뻔뻔한 저녁 식사의 딜레마’가 입증된 셈이다.

‘뻔뻔한 저녁 식사의 딜레마’는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가 일상생활에 적용된 경우라 할 수 있다. ‘죄수의 딜레마’란 자신의 이익만을 고려한 선택이 결국에는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방에게도 불리한 결과를 유발하는 상황을 가리키는 심리학 용어다. 서로 믿고 협력해서 합리적인 선택을 하면 두 사람 모두에게 가장 좋은 결과가 나타날 수 있음에도 서로를 믿지 못해 자신의 이익만을 고려한 선택을 함으로써 결국 제일 나쁜 선택을 하고 마는 현상이다. 머리로는 무엇이 최선인지 알고 있으나 결과를 알 수 없다는 불안감과 상대방이 잘못된 선택을 함으로써 나만 손해 볼 수도 있다는 초조함이 최악의 선택을 유도한다.

실제로 이 같은 일은 우리 주변에서 비일비재로 일어난다. 가족이 아닌 이상 친구들이나 지인, 직장 동료들과의 식사 자리에서는 돈을 누가 낼 것인지, 계산 방법은 어떤지, 어떤 수준의 메뉴를 골라야 적당할지가 항상 고민거리다. 결과에 따라서는 모임에서의 좋았던 분위기와 기분은 간데없고 더 많은 돈을 지출한 데 따른 불쾌한 감정만 남게 될 우려도 있다.

사람이 그리운 요즘 같은 시국이라면 ‘뻔뻔한 저녁 식사의 딜레마’ 때문에 고민하게 되는 한이 있어도 여럿이 북적대는 자리에서 밤늦게까지 실컷 웃고 떠들며 먹고 마실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다시 그런 날이 온다면 호방하게 웃으며 좌중을 향해 이렇게 외치고 싶다.

“오늘 계산은 내가 다할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원 없이 시켜 먹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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