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식물의 겨울나기

어떤 계절이든 모조리 싫어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는 무렵을 참 좋아했는데 요즘은 그맘때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 싫어, 그나마도 두려워하게 됐다. 그래, 싫은 게 아니다 두려운 마음이다. 어떤 계절이든 두렵다. 봄의 화창함이 두렵고, 여름의 상쾌한 풋내가 두렵고, 가을의 뭉클함이 두렵고, 겨울의 긴 밤이 두렵다. 내가 겨우 그 계절에 적응할 때쯤 다음 계절이 도래한다. 그저 그럴 뿐이다. 시간은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꾸준히 흐르고, 나는 때에 맞춰 방패를 앞세워 나아갈 뿐이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시간은 ‘겨울’이다.

 

 

겨울이 올 때는 냄새부터 다르다. 우선 모든 것은 냄새로 기억되는 것 같다. 익숙한 겨울바람 냄새. 그것이 맡아지면 계절의 방패를 준비하기엔 이미 늦었다. 가을이 지나기 전, 잠 시간을 단계별로 조절하고, 계절성 우울증이 오는 것도 준비해야 한다. 해가 줄어가는 시간에 대응할 수 있는 감정 또한 준비해 둬야 한다. 겨울은 나의 모든 마음을 멈추게 하고, 유지해 나가는데 온 힘을 쓰게 한다. 이 점들을 파악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내 안에 파묻혔고, 허우적거리기에도 버거웠다. 객관적으로 ‘어떤 계절엔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한다’라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 계기는 근래의 일이다. 엉뚱하게도, 식물을 통해 배웠다.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특히 겨울에는 식물 집사에게도 여러 번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단 한 번의 실수로 몇 년을 키우던 식물과 이별을 맞게 될 수도 있다. 잠시 환기를 시킨다고 창문을 열어 둔다는 게, 깜박하고 긴 외출을 해버리게 된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겨울을 준비할 수 있는 일들 중 아주 중요한 것은 내가 키우는 식물의 월동 온도를 알고 있는 것이다. 검색창에 키우는 식물 이름과 ‘월동’ 혹은 ‘월동 온도’를 검색하면 온도나 습도까지도 알려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새는 다양한 기술로 식물을 보다 더 오래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사람에게 먹는 비타민D 영양제가 있듯이, 식물에게도 겨울철 부족한 빛을 채워줄 ‘식물등’이 있다. 햇빛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럭저럭 살 만한 환경을 만들어 준다. 다음은 통풍이다. 추위 때문에 문을 열어 두는 시간이 매우 적다 보니, 선풍기나 써큘레이터(Air circulator)를 사용해서 부족한 통풍을 해결할 수 있다.

겨울은 나조차도 생존이 문제인 시기이기 때문에 식물을 정성껏 돌볼 여력이 되지 않는다. 다행히 겨울은 식물도 겨울 곰처럼 쉬어 가는 시기여서, 물도 많이 안 필요하고 자라나는 속도도 거의 없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가을에 만반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아무도 식물의 생사를 장담할 수 없다.

 

 

그런 한 해를 보낸 적이 있다.

어느 해 겨울, 나는 무방비 상태로 또다시 참고 견뎌야 할 일들이 생겼고, 결국엔 몸과 마음 모두 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렇게 가을을 보내고 겨울이 도래했다. 매일 끙끙대며 약을 먹고, 잠으로 도피하고를 반복하는 사이 식물은 초겨울까지 자연스레 방치되고 말았다. 방치된 식물은 아주 작아지다가 결국 아스라지고 만다. 그 광경을 보고 조금 정신이 들자, 후다닥 실내로 도피해야 하는 식물들을 들였다. 집안은 어느새 정글숲이 되었다. 가습기를 더 맹렬히 돌렸다. 겨울은 건조와의 전쟁이다. 습도를 올리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 한다. 사실 문제는 더 남아있었다. 아직 식물들이 모두 들어오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집으로 들인 식물의 기준은 무엇인가?

갑작스레 떠오른 질문에 스스로 멈칫, 하고 말았다. 어떤 경계를 나누고 있는 것인가. 혹시 식물의 값인가, 혹은 함께 한 시기의 문제인가. 한 분류로 나눌 수는 없었지만 미묘한 경계가 느껴졌다. 식물을 좋아한 이래, 가장 큰 시련이 왔다. 착잡한 심정이었다. 모든 것이 무용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은 점점 빠르게 모든 것을 얼려버렸다.

이제, 어느 계절이든 모두 싫어했던 나는, 더 튼튼한 방패를 미리 만들어 두려 한다. 그 덕에 온전히 다가오는 계절에 맞서고, 이겨낼 수 있도록 말이다. 당신에게 계절의 겨울이든, 마음의 겨울이든 다가오는 것이 느껴진다면 열심히 방패를 만들어보자. 내가 하는 작은 준비들이 당신에게도 유효하면 더할 것 없이 행복할 것이다. 평온 그대로를 지키기 위하여.

 

* 매주 2회 수, 금요일 글이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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