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선의 [가족의 심리학] (5)

[정신의학신문 : 서대문 봄 정신과, 이호선 전문의] 

 

요즘 예전에 방영됐던 드라마가 복고풍 열기를 타고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재방송되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덕분에 옛날 영화 같은 드라마를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1996년부터 이듬해까지 방영되었던 <형제의 강>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196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세월 동안 경남 밀양을 무대로 펼쳐지는 한 가족사이자 산업화 시대의 자화상을 다룬 작품이다. 이 드라마의 주요 관람 포인트는 삼부자 사이의 애증과 갈등이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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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서복만(박근형 분)은 가난한 집안을 위해 부지런히 일할 생각은 하지 않고 아내를 구박하고 주색잡기에 빠져 살면서 장남 준수에게만 모든 애정을 쏟아붓는다. 그가 준수에게 희망을 거는 건 지역에서 소문난 수재였기 때문이다. 다른 자식들은 어떻게 되든 말든 그는 오직 준수만을 왕자처럼 떠받든다. 그가 준수에게 바라는 건 출세한 뒤에 따라올 부귀와 영화다. 준수가 서울대 법대에 들어가 판검사가 되고 국회의원과 장관이 되는 게 소망이다.

큰아들 서준수(김주승 분)는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타고난 머리와 엄청난 노력으로 엘리트의 길을 걷게 된다. 아버지의 유일한 희망으로 자라났지만, 귀하게만 떠받들어지며 자라서인지 인간미라곤 찾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형제들의 희생을 딛고 공부에 매진해 사법시험에 합격함으로써 출세하게 되었으나 가족은 물론 고향 사람 모두를 배신하기 시작한다. 가난하고 못 배운 가족들을 벌레 보듯 바라보는 냉소적인 모습이 자주 나온다.

둘째 아들 서준식(박상민 분)은 인간미가 넘치고 힘이 좋으며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인물이다. 아버지에게 많이 맞고 자랐지만, 묵묵히 어머니 곁을 지키며 남동생 준호와 누나 정자를 살뜰히 돌보고 챙긴다. 사랑하는 여자마저도 형에게 빼앗겨버린 그는 우여곡절 끝에 조직 폭력배가 되었으나 시종일관 가족의 화합을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쓴다. 그렇지만 워낙 성향이 다른 식구들이라 끝내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가족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혈연이지만, 그것이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존중과 배려가 전제되어야 한다. 한 사람은 일방적으로 혜택을 보고, 한 사람은 일방적으로 손해를 당한다면, 한 사람은 늘 양지에 자리하고, 한 사람은 늘 음지에 자리한다면 온전한 가족관계가 유지되기 어렵다. 가족 구성원 사이에 누군가의 피눈물 나는 희생 덕분에 누군가가 빛나는 성공을 거두었을 때 그 성공의 열매는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그리고 그 열매를 맛보며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웃을 수 있을까? 돌아올 수 없는 시간 속에 쓰라린 상처만 남을 공산이 크다.

형제간 경쟁(Sibling Rivalry)은 인간의 본능이다. 동기간이 한 부모를 두고 애정 다툼을 벌이며 경쟁하는 관계가 발생하는 것이다. 어린이집에서 두세 살 된 아이들이 자신의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서로 비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이들은 다른 아이의 장난감을 쳐다보며 부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장난감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행동한다. 어렸을 때부터 비교와 시기심을 가지는 것이다. 특히 형제자매는 태어나면서부터 옆에 있는 경쟁자다. 어릴 때는 세상 모든 걸 다 가지려 하지만, 그것은 가능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이런 시기심은 비교에서 나온다. 더욱이 나와 비슷한 형제자매가 가지고 있는 것은 더 시기하게 마련이다. 작게는 보잘것없이 보이는 장난감에서부터 크게는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격렬하게 다투게 된다. 형제간에 나이 차가 적을수록 경쟁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나이 차가 많을수록 경쟁의식이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 시기심은 잘 사용하면 자신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장난감을 더 얻기 위해 바르게 행동하고, 엄마의 사랑을 더 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며, 사람들에게 더 인정받기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경쟁에도 불구하고 형제간 차이가 크게 벌어지는 일도 많다. 비슷한 상황 속에서 자라나 학력이나 경제력 등에서 별 차이가 나지 않는 형제의 경우, 나이 들어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지만, 한 사람은 크게 성공했으나 한 사람은 그렇지 못할 경우, 형제 사이는 어렸을 때보다 더 안 좋을 수 있다. 위화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형제 사이에 비교 대상이 되는 것은 자존심에 위협이 되고 상처가 된다. 형제 중 하나가 크게 성공하면 기뻐하고 축하하는 마음보다는 그렇지 못한 자신에게 수치심이 들면서 감추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심지어 형제에게 시기심을 느낀다는 것 때문에 죄책감까지 들 수 있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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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사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만의 정신적 트라우마가 있을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왜 가족을 위해 희생하기 시작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누군가 요청해서 희생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맏이라는 이유로 동생들을 위해 희생하라고 했을 수도 있다. 어릴 때는 엄마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엄마 말은 절대적이고 거역했을 때 자신이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엄마에게서 독립했다면 나를 고통에 빠뜨리면서까지 엄마 말을 들을 필요는 없다. 그런 희생은 엄마와 다른 가족에 대한 화를 커지게 한다. 커진 화는 결국 내가 감당할 수 없게 되고, 타인이나 나를 향해 다시 돌아와 정신건강을 해치게 된다. 그러면 또다시 가족과의 관계는 악화하고 말 것이다.

아무도 요청하거나 강요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희생하며 살았을 수도 있다. 자신은 부모님을 위해서, 동생들을 위해서 한평생 헌신하고 살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늘 가족들이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해 불만이다. 이때도 역시 나는 왜 가족 중 누구도 요청하거나 강요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가족을 위해 희생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가족에게 희생함으로써 가족 구성원들에게 인정받거나 사랑받겠다는 무의식적인 욕구가 있을 수 있다. 그 같은 희생이 힘들고 버겁고 부담스럽다면 당연히 그런 생각과 행동을 멈추고 앞으로는 좀 더 자유롭게 사고하고 행동하면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좋다.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한양대병원 외래교수, 한양대구리병원 임상강사
(전)성안드레아병원 진료과장, 구리시 치매안심센터 자문의, 저서 <가족의 심리학>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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