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식물과 사람

식물이 좋았다. 혼자 식물을 돌볼 때 도 충분히 행복했다. 식물을 하나씩 들일 때마다 가슴이 설렜고, 그 식물이 집에 잘 적응하기를 바라며 매일 들여다봤다. 사람을 피하고자 도망쳐 들어온 세계. 늘 평화롭고 평온했다. 

그러나 식물을 통해 사람을 만나면서, 또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기존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실질적이고 유익한 정보를 배울 수 있었고, 다른 집 식물들을 잔뜩 구경할 수 있었다. 이파리 하나라도 틔우면 방방 뜨는 나 같은 사람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불현듯 반갑고, 동질감이 들었다.

 

 

한 식물이 눈에 확 들어왔다. ‘초코리프(Euphorbia cotinifolia)’ 라는 식물이었다. 얇은 가지에 둥근 삼각형 모양의 잎, 잎은 짙은 초콜릿 색이 도는 식물이었다. 반 버티기, 반 포기 상태에서 매일 검색을 했다. 인생은 타이밍이다. 어떤 한 분이 SNS에 초코리프를 나눔 하신다는 글을 올리셨다. 글에는 직접 찾으러 오셔야 한다고 써 있었지만, 내 눈에는 그런 글귀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당시의 나는 해외라도 갈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나는 뭐랄까…, 첫 데이트하는 수줍은 사람처럼 눈앞에 보이는게 없었다. 약속장소에서 드디어 만나게 되었고, 그분 손에는 작고 아름다운 초코리프가 보였다. 식물과 토분을 파는 곳에서 만나게 되었다. 토분과 식물을 파는 그곳 한 켠에는 카페와 레스토랑을 겸하고 있는 공간이 있었다. 커피라도 대접하겠다고 내가 먼저 말했어야 하는데, 그분이 나의 커피까지 결재하고 있는 순간을 목격했을 때는 이미 내가 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맙소사, 이게 무슨 염치없는 행동이란 말인가?

이미 늦은 상황임을 빨리 알아차리고, 정신을 부여잡고 대화를 이어갔다. 이런저런 대화 중에 휘커스 움베르타(Ficus Umbellata)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마침 카페 공간에 움베르타가 잔뜩 있었다. ‘예쁜 휘커스 움베르타를 들여서 외목대로 크고 웅장하게 키우리라.’가 화두가 되었다.

 

 

실제로 나는 돌아와 바로 휘커스 움베르타에 대해 검색을 많이 했고, 깐깐하게 검색하고 시장에서 발품도 팔아서 휘커스 움베르타 한 그루를 들였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외목대로 웅장하게 컸다. 다만, 너무 웅장하다. 우리 집에서 가장 큰 ‘나무’가 되었다. 다음 이사가 큰 걱정이 될 정도로 커버렸다. 나도 키가 작은 편은 아닌데, 내 키를 훌쩍 넘겨버렸다.

식물 가게 사장님과의 인연도 빼놓을 수 없다. 병원에서 상담을 받는 날이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도 해내야 하고 속은 멀미가 날 만큼 엉망진창이 되곤 한다. 그때 나는 집에 오는 길을 조금 틀어서 자주 가는 식물 가게에 들르곤 한다. 내 마음의 아지트 같은 공간이다. 특별한 날씨가 아니라면 우선 입구부터 초록색이 가득하다. 입꼬리가 실룩거린다. 가게에 들어서면, 완전히 다른 기분이 된다.

가격과 상관없이 멋진 식물들이 많은데, 식물과 그것을 심어줄 화분을 골라 놓고 이제 본격적으로 수다를 시작한다. 근황부터 시작해서, 식물 이야기도 한참 하고 근래에 썼던 비료 이야기 화분 이야기, 희귀 식물 이야기, 강아지 이야기 등등 소재는 끝도 없고 어디로 흘러갈지도 모른다. 어쩌면 식물과 더불어 사람에게 치유받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분명하다.

 

나는 적기에 건강한 인간관계를 배우지 못했다. 매번 서툴렀고, 나 자신을 지키기에도 버거웠다. 남을 어떤 식으로 이해하고, 대해야 하는지는 어른이 되고 나서야 배우기 시작했다. 뒤늦었지만, 식물을 통해 사람을 만났고 여전히 그들을 통해 건강한 관계 란 무엇인지에 대해 배우고 있다. 식물을 통해 치유받고, 식물을 통해 만나게 된 사람들을 통해 한 단계 더 성장해 나간다. 그런 의미에서 식물은 나에게 정말로 소중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 매주 2회 수, 금요일 글이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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