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나를 태우는 또 다른 나 (2)

[정신의학신문 : 채정호 가톨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대한불안의학회회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바꿀 수 있는 것은 ‘행동’이다. 몸과 마음이 아닌 행동을 조절해야 한다. 하지만 행동을 바꾸고 조절하는 일 또한 말처럼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안하고 ‘죽을까?’라는 생각을 하는 와중에, 도망가지 않고 버티는 행동을 하기에는 굉장한 힘이 필요한 것이다. 사람들은 불안에 빠진 상대에게 쉽게 의지를 들먹인다. ‘그걸 왜 못하냐?’, ‘의지를 가져라.’ 이런 식이다. 일상생활에서 물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실제로 물을 먹는 행동으로 이어지듯, 무언가를 하려는 의지만 있으면 행동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인과론적 사고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렇다면 ‘행동’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의지’와 비슷한 것일까 아예 다른 의미일까?

물론 의지가 강하다는 건 좋은 뜻이다. 하지만 불안장애를 극복하는 일에 있어서 환자의 의지 부족을 탓하는 건 옳지 않다. 도덕적인 옳고 그름을 떠나 틀린 말이기 때문이다. 불안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누구보다 의지가 강하다.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고, 두 번 다시 불안으로 발생하는 감정 상태를 겪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의지의 방향’이다. 어떤 질병이든 낫기 위해서는 본인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해석하고 그 질병에 관해 이해해야 한다. 불안을 느끼고 고통을 겪을 때, 우선 중요한 것은 도대체 불안이 무엇인지 잘 이해하는 것이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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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을 겪는 사람들 대부분은 불안을 겪는 그 상황에서 본인이 도망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많이 경험한다. 흔히 이야기하는 ‘공황’이다. ‘공황(恐慌, Panic)’이란 쉽게 말해 짧은 시간에 너무 큰 불안이 밀려드는 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지나치게 막대한 불안이 밀려드니 당사는 정말 죽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기절할 것 같거나,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황이라는 개념을 모르면 보통 ‘나의 신체 증상 때문에 나타나는 거구나.’라고 생각하고 그 상황을 피할 수밖에 없다. 당연하게도 죽을 것 같으니 병원에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공황이나 본인이 겪는 질병의 개념을 잘 알고 있다면 도망가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100M 달리기를 하면 심장이 터질 것 같고 숨이 멎을 것 같은 느낌 및 신체 증상이 나타난다. 하지만 너무 힘들어서 쓰러질 것 같아도 두려움에 응급실을 찾지 않는다. 빨리 달리면 심장이 뛰고 숨이 가쁘다는 것, 이러한 증상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알고 있기에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따지고 보면 공황장애 환자가 겪는 증상과 달리기를 했을 때 몸의 증상은 같다. 하지만 공황장애 환자는 병원에 가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고 믿는다. 몸의 증상만 따졌을 때, ‘100M 달리기와 같은 상황이다.’라는 걸 인식해야 한다. 너무 힘들고 괴롭지만, 이건 내 몸에서 일어나는 ‘교감 증상’, ‘항진 증상’인 것을 아는 것이다. 즉 내 병이 어떤 증상이 발현되는가에 대한 기저를 알게 되면 굳이 도망가지 않고 머물 수 있게 된다. 머물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자신감 상승 및 회복에 대한 가능성을 뜻한다.

 

문제는 본인의 질병을 이해하지 않고 계속 모를 경우, 상태가 악화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소위 말하는 ‘파국화(Catastrophizing)’ 인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파국화’는 부정적 사건이 비합리적인 방향으로 과장되어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리라 생각하는 ‘인지왜곡현상’을 말한다. ‘재앙화’ 또는 ‘부정적 과장’이라고도 한다. 한 번 이러한 인지가 생기면 도망가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는 100M 달리기를 한 후,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뛴다고 그 상황에서 도망가지 않는다. 무엇이 다른 걸까? 파국화 인지가 생긴 환자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100M를 뛰어서 심장이 뛰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100M를 안 뛰었는데도 심장이 뛴다. 이건 말이 안 되지 않나?”

100M 달리기를 하지도 않았는데 뛴 것과 같은 증상이 일어난 것은 이미 그 정도의 룰에 걸렸다고 말할 수 있다. 무리한다거나 불안이 확 생기거나,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평상시 갖고 있던 교감신경계 기준 톤이 조금씩 올라간다. 그러한 상태가 해결되지 않은 채로 답답한 곳, 공황이 오는 장소에 가면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다. 100M를 뛰지 않았어도 100M를 뛴 것만큼 몸에 무리를 주고 있었던 것과 같다. 공황장애 환자는 심장이 뛰어서 두렵다고들 말하지만, 심장이 안 뛰었다면 쓰러졌을 것이다. 공황장애에서 심장이 뛰는 현상은 출력이 떨어지는 자동차가 출력을 급격하게 높이기 위해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본인의 질병과 증상, 그 개념을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심장이 뛰는 증상에 대해 잘 모르면 겁을 먹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 교감신경이 잘 작동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다면 도망가지 않을 수 있다. 잘 알면 도망가지 않는다. 우리는 ‘도망가지 않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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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적 불안, 의지가 아닌 ‘고통’과 ‘기능’의 문제     

불안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정상 범주의 불안을 갖고 있으며, 어떤 사람은 불안증세 때문에 치료를 받아야 한다. 모두가 불안에 떤다고 하면서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은 따로 있는 것이다. 병적 불안은 어떤 기준으로 구분되는 것일까?

쉽게 말하자면 불안감이 너무 클 때 병적 불안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불안의 정도가 크다는 것이 어느 정도여야 한가는 너무나 주관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설명하기도, 객관화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의료계에서 이야기하는 병적 불안이란 ‘고통과 기능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불안이 너무 커서 일상적인 기능에 어려움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또한 그로 인한 고통이 강해 너무 싫고, 불안을 피하고 싶다면 병적 불안이다.

만약 굉장히 큰 불안을 줄 만한 상황을 겪었다고 해도 당사자의 의지와 힘이 강해서 기능과 고통에 문제가 없다면 병이 아니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본인의 입장에서 괴롭지 않고, 괴롭더라도 그 정도가 심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일부러 불안을 찾아 즐기는 ‘익스트림 스포츠’를 예로 들 수 있다. ‘익스트림 스포츠’를 하는 사람은 불안하지 않아서 그러한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다. 상당히 불안한 장소에서 불안한 행위를 하고 있지만, 불안에 고통을 느끼는 게 아니라 즐거움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즉 본인의 기능을 잘하고 괴롭지 않다고 한다면 병적 불안이라고 하기 어렵다.

 

불안에 관해 이야기하다 보면 이러한 질문들이 많이 등장한다. 불안이 문제시되는 게 주관적인 기준인 만큼, 불안을 견디는 힘과 이겨내는 힘이 원래 낮은 사람이나 특히 잘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체질적으로 불안을 잘 느끼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 같은 부모 아래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이라도 성격이 전혀 다른 것처럼, 두려움을 크게 겪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양육의 문제보다 기질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 물론 타고 난 불안과 두려움이 크면서 더욱 학습되고 구체적으로 형성되기도 한다. 예민하거나 민감한 아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 아이들이 크면서 두려운 상황을 마주했을 때 경험을 기피하고, 그렇게 기피하는 경험이 쌓이면 두려움을 잘 느끼는 사람이 된다. 두려움이 생기면 피하는 것이 경험으로 되는 것이다. 경험을 할 수 있는 상황 자체를 피해버리는 것을 ‘경험 회피(Experiential Avoidance)’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간단하게도 그 해결 방법은 경험을 마주하는 것이다. 발표 불안을 예로 들어보자. 어떠한 이유로 발표를 하는 것이 불안해서 회피한다면 그 회피의 경험이 또다시 쌓인다. 발표 불안을 하기 위해서는 발표를 많이 해야 한다. 발표라는 상황에 노출이 되고 익숙해지면 그 상황을 경험하는 데서 노하우가 생긴다. 두렵기 때문에 경험 회피를 한다. 그래서 발표할 상황이 되면 각종 방법을 통해 계속 회피하게 되는 것이다. 이게 계속되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성공 경험의 기회가 없어진다. 성공 경험이 없으면 비슷한 상황이 왔을 때 또다시 두려워진다. 끊임없이 학습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나빠지는 것이다. 따라서 두려움을 잘 느끼는 사람이고 민감하고 예민할수록 사실은 경험 회피를 줄이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

 

 

감당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넘어가기

경험 회피를 막는 것은 자신이 두려워하는 지점을 마주해야 한다는 말이다. 반면, 지금까지 미루고 회피해온 것을 갑작스럽게 마주하기란 당연히 말처럼 쉽지 않다. 이겨내기 위해 억지 경험을 했다가는 부작용으로 더욱 상태가 악화될 수 있다. 따라서 안전한 상황에서, 감당할 수 있는 노출의 단계부터 하나씩 시도하는 것을 권장한다. 본인이 해보지 않았고, 특히 두려워하는 경험을 하나씩 넘어가는 것이다. 이 과정을 ‘점진적 노출’, 전문적인 용어로 ‘단계별 탈감각화’라고 표현한다. 어떤 불안이든지 하나씩 해보는 것이 두려움을 이기는데 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개 공포증이 있다고 할 때의 치료 과정을 이야기해보자. 개 공포증이 있는 사람에게 처음부터 무서운 도사견을 만나게 해서는 안 된다. 애니메이션 속에 등장하는 개를 보여준 다음, 개 모양의 인형을 보여주고 나서, 실제의 강아지를 보여주며 차근차근 하나씩 경험하게 해야 한다. 이렇게 단계별로 경험하면 공포증을 해결할 수 있다. 실제로 목표가 정확하게 정해진다면, 이런 공포증은 몇 시간 만에 해결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두려움과 불안의 원인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불안에서 벗어나는 길은 생각보다 자신과 가까이 있다. 

 

채정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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