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록의 [마음속 우물 하나] (8)

[정신의학신문 : 사당 숲 정신과, 최강록 전문의] 

 

얼마 전 서울시 양천구 목동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30대 남편이 아내를 흉기로 찌른 뒤 투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남편은 이미 사망한 상태였고, 집 안에서 흉기에 찔린 아내는 병원으로 긴급 이송했으나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사건 자체도 충격적이지만 이 부부가 이처럼 극단적 상황으로 내몰린 사연은 더욱 가슴이 아팠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들 부부는 4년 전 어린 딸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교육받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경기도에 있는 아파트를 팔고 목동에 있는 아파트 전세를 얻어 이사했다고 한다. 아내는 가격이 더 오르기 전에 대출을 받아서라도 집을 사는 게 좋겠다고 했지만, 남편은 그렇게 무리할 것까지 있느냐며 좀 더 지켜보자고 만류했다.

그 사이 부동산 시장이 요동쳤다. 이사 온 지 3년여 만에 살고 있는 아파트 가격이 무려 두 배나 올랐다. 아내가 사자고 할 때는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살 수 있었으나 이제는 도저히 살 수 없게 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이사를 위해 자신들이 매도했던 경기도 아파트는 두 배 반이나 가격이 뛴 상태였다. 이사를 하지 않았거나 이사를 했더라도 빨리 집을 샀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탄식이 이어졌다. 이제는 돌아갈 수도 그냥 있을 수도 없게 된 것이다.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강력한 대책을 내놓겠다는 정부의 말을 믿었으나 아파트 가격은 내리기는커녕 갈수록 더 폭등했다. 부부는 틈만 나면 부동산 문제로 다퉜다. 아내는 남편을 원망했고, 남편은 아내가 야속했다. 갈등은 눈덩이처럼 커지기만 했고, 급기야 이런 참변을 낳고 만 것이다.

 

올 한 해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전 국민이 불안감과 두려움을 숙명처럼 여긴 채 살아왔다. 그래서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마저 생겨났다. 우울증은 일상이 되다시피 했다. 이에 더해 최근에는 ‘부동산 블루’ 또는 ‘하우스 블루’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국 주요 도시의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전세를 살던 사람은 전세 가격이 오르다 보니 월세로 전락하거나 더 싼 가격의 다른 지역으로 이사해야 한다. 내 집 마련의 꿈은 헛된 꿈이 되어버렸다. 월세를 살던 사람 역시 더 싼 월세를 찾아 전전해야 하고, 돈을 모아 작은 전세방이라도 구하려던 희망을 접어야 한다.

내 집을 소유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다른 집 가격이 워낙 오른 탓에 이사하기가 쉽지 않다. 오른 집값 때문에 세금만 더 내야 할 판이다. 이래저래 모든 사람이 집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형국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부동산 문제로 속앓이 하다가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사진_픽셀
사진_픽셀

 

우울증(depressive disorder)은 생각하는 과정과 내용, 동기와 의욕, 행동과 수면 등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정신기능이 저하된 상태가 매일 그리고 하루 종일 나타나는 경우를 가리킨다.

시간이 지나면 우울증의 원인으로 작용했던 사건이나 기억이 희미해지거나 다소 무뎌질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아련해지지 않고 오히려 또렷해지는 것도 있다. 실생활과 긴밀히 연결된 문제가 그렇다.

부동산도 그중 하나다. 부동산 블루에 시달리는 사람은 과거의 기억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상대방에 대한 원망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다가 결국은 자신을 향해 자책한다. 모든 것이 나 때문이라는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때 그 집을 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벌써 집값이 몇 배나 올랐는데…….’
‘그렇게 싸게 집을 팔다니 내가 미쳤지. 그냥 뒀더라면 몇 억을 벌 수 있었을 텐데…….’
‘집주인이 전세 보증금을 올려달라고 하면 어쩌지? 대체 어디로 이사를 간단 말인가?’
‘저렇게 무능한 사람과 결혼한 내가 바보지. 집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이냐고.’
‘이 나이 먹도록 집 한 채 없이 식구들 데리고 이사를 다니다니, 난 참 한심한 놈이야.’

이런 감정에 사로잡혀 있다 보니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쉽지 않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려고 길에만 나가면 수많은 빌딩과 아파트가 눈에 들어온다. 산책을 하거나 장을 보러 가려 해도 시야에 들어오는 건 새로 짓는 아파트들이다. 저렇게 많은 건물과 집들 중에 내 몸 하나, 우리 한 가족 편히 살 곳이 없다는 현실이 너무 야속하고 속상하고 한심스럽기만 하다.

전 국민이 부동산 블루에 갇혀 있는 나날이 길어지면서 새로운 용어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영끌’, ‘이생집망’, ‘벼락거지’ 등이다. 위기감을 느낀 젊은이들이 온갖 돈에 빚까지 끌어 모아 집을 마련하는 걸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은다)’이라 하고, 살아생전에는 집을 살 수 없게 되었다는 자조 섞인 탄식을 ‘이생집망(이번 생에서 집 사기는 망했다)’이라 하며, 집값이 안정될 거라는 정부 대책을 믿고 주택 구입을 미뤘다가 가격이 올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 사람들을 ‘벼락거지’라고 한다. 무주택자의 심한 박탈감이 담긴 말들이다.

 

부동산 블루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 부동산 블루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그리 간단치가 않다. 정부의 적절한 대책, 사회적 분위기의 변동, 경제적 여건의 성숙, 시장의 안정, 국민 개개인의 집에 대한 인식과 가치관의 변화 등이 종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의학적 측면에서 시도해 보거나 노력해 보면 좋을 것들이 있다.

 

먼저 행복에 대해 다시 정의해 보는 것이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상태를 행복하다고 느낄까?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자. 좀 더 넓은 집, 좀 더 좋은 집, 좀 더 비싼 집에서 사는 게 행복일까? 월세에서 전세로, 전세에서 자가로 점점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어가는 게 행복일까? 소유의 크기가 행복의 크기와 정비례할까? 오지 않을 불분명한 미래를 위해 현재의 소소한 행복을 포기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정신분석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라는 저서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히브리 민족의 역사에서 광야는 핵심적인 상징이다. 그것은 고향이 아니다. 도시도 부도 없는, 유목민의 땅이다. 유목민은 그들이 최소한 필요로 하는 것만을, 다시 말하면 쌓아두는 재산이 아니라 생계를 위한 필수품만을 소유한다. 누룩 넣지 않은 빵은 훌쩍 떠나야 하는 사람들의 빵, 유랑민들의 빵이다. 수카(Suka, 장막)는 유랑민의 거주지로, 천막처럼 쉽게 세우고 허물 수 있는 집이다. 히브리 예언자들은 인간의 자유에 대한 비전을 혁신했다. 그들이 제시한 새로운 비전은 곧 소유에 얽매이지 않는 삶이었다.”

신은 광야를 통해 사람들이 존재 지향적 삶을 살아가기 원했지만, 사람들은 틈만 나면 안정적인 주거지와 기름진 음식을 그리워하며 소유 지향적 삶을 추구했다. 이것이 역사다. 모든 시대와 장소에 걸쳐 인간은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애쓰고, 소유욕을 채우기 위해 노력했으나 원하던 궁극의 행복을 얻지는 못했다. 욕망을 채우고 소유를 넉넉히 하는 것이 행복의 조건이 아니라는 말이다.

행복은 누가 가져다주는 게 아니다. 내가 찾고 발견해 누리는 것이다. 현재 내가 향유할 수 있는 작은 행복이 있다면 기꺼이 만족하며 사는 게 좋다. 그것이 정신건강에 최상이다. 남들이 말하는 행복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행복을 정의해 보자.

 

다음은 비교하거나 원망하지 않는 것이다. 친구, 지인, 친척, 이웃과 나를 비교해서 상대적 박탈감과 상실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나는 내 삶을 충실히 살면 된다. 아는 사람이 큰 아파트에 산다고 해서 주눅 들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 아파트 가격이 폭등했다고 해서 배 아파할 필요도 없다.

그들은 그들이 삶이 있고 나는 내 삶이 있다. 작은 아파트에 살고, 자가가 아닌 전세에 살더라도 행복하면 된다. 하루하루 재미있게 살면서 내 나름의 희망을 갖고 살면 그게 바로 멋진 인생이다.

가족끼리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고 사랑하면 그 집은 아무리 작아도 스위트홈이지만, 가족끼리 만나기만 하면 아웅다웅하거나 데면데면 무관심하다면 그 집은 아무리 크고 멋지다 해도 그냥 하우스일 뿐이다. 작은 평수의 집에 산다고, 자가가 아닌 전셋집에 산다고, 부부끼리 또는 자녀가 부모에게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는다면 넓은 평수의 집이나 비싼 집에 살게 되더라도 새로운 원망과 불평거리가 생겨날 것이다.

 

코로나 블루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언젠가 백신이 만들어지고, 모든 사람이 접종하게 되면 그때는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부동산 블루는 백신을 만들 수도 없고, 언제 끝날지 기약도 없다. 그래서 더 힘들고 괴롭다. 그렇더라도 온 인류가 코로나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미래를 꿈꾸듯 부동산 블루도 꼭 극복될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번듯한 하우스는 없더라도 세상 부럽지 않은 홈이 있다면 나는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다. 어차피 집을 사기 어려우니 정신 승리나 하고 있으라는 의미가 아니다. 당장 해결되지 않는 일에 온 신경을 쓰며 상념에 사로잡혀 봐야 해결되는 일이 없다. 오히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마음이 점점 소진되면서 우울감에 사로잡히게 될 뿐이다.

우울한 상태에 빠져들수록 내 삶의 침체는 더욱더 깊어진다. 현실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 지금까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면 경제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하나둘씩 공부하고 안목을 넓히면서 다시 찾아올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대비하는 게 현명하다. 모두가 힘든 시기다. 나만 힘든 게 아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한발 떨어져서 생각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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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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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언 자유를 느꼈어요. 실제로 적용해볼게요"
    "늘 따뜻하게 사람을 감싸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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