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고문 이시형]

사진 픽사베이

아이 앞에 어려움을 있는 대로 보여줘야 하나. 가족을 위하는 마음,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절로 우러날 것이다. 서로에 대한 책임감도 커질 것이다. 이보다 더 값진 교육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만큼 손님 접대를 융숭하게 잘하는 민족도 흔치 않으리라. 외국 손님은 분에 넘치는 대접에 오히려 당황해한다. 이 신세를 어떻게 갚아야 할는지 큰 걱정을 하며 돌아간다. 이 정도면 손님에게 부담감을 안겨준 것이다. 서구 가정에선 손님이 온다고 야단법석을 떨지 않는다. 평소 자기들 먹는 대로 내놓기 때문에 손님은 부담감을 갖지 않아도 된다. 나는 이게 진정한 손님 접대라고 생각한다.

 

한데 이 별난 대접을 아이들에게까지 베풀고 있다. 한국 아이들은 모두가 그 집의 손님이다. 집안에 어려운 일이 생겨도 아이들에게만은 그저 쉬쉬한다. 직장에서 감원당한 아버지가 행여 아이들이 알까봐 매일 아침 출근을 한답시고 집을 나서 하릴없이 돌아다니다 퇴근시간에 맞춰 돌아오기도 한다. 감원이 무순 뜻인지도 모를 나이라면 그런 말을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제법 철이 든 아이들한테도 왜 감춰야 하는 것일까?

 

아이들 보기 창피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이야기를 한들 아이들 입장에서 당장 할 수 있는 일도 없으니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도 일리는 있다. 행여 아이들 기나 죽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집안 걱정하다가 공부에 지장이라도 온다면 이거야말로 큰일이다. 해서 공부하는 아이한테만은 절대로 살림걱정을 시키지 않는 게 한국 부모에겐 하나의 불문율로 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 한국 가정엔 철부지 손님이 많다. 집안 형편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다. 어쩌다 걱정이 되어 물어도 부모의 대답은 한결같다.

 

“너는 몰라도 돼! 걱정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라.”

 

대개의 아이들은 집안 형편에 대해서 깜깜 밤중이다. 알려고도 않는다. 물어야 가르쳐주지도 않거니와 그런 걱정은 해선 안 되는 것으로 가르치기 때문이다. 빚을 내서 학비를 대는 것까지야 좋다, 그런데 빚을 내서 여행도 보내고 카메라도 사준다. 그러니 아이 생각에 우리 집이 제법 잘사는 줄로 알게 된다. 해서 생떼를 쓰며 졸라대고, 행여 안 해주다간 비뚤어질 게 걱정돼 무리를 해가면서 요구를 들어준다.

 

부모 입장에선 야속한 생각도 든다. 이놈이 어쩌면 부모 속을 이다지도 몰라주나 싶을 게다. 그저 저만 알지 부모 어려운 형편은 생각도 안 해본다. ‘자기만 아는 아이’, 이게 문제의 씨앗이다. 이렇게 자라면 부모 생각은 손끝만큼도 않는 아이가 된다. 부모는 죽도록 일하며 한 푼이라도 아껴 내 밑이나 대주는 충복쯤으로 알게 된다. 늘그막에 서럽다고 자살한 노부부의 비극도 이런 나만 아는 지식의 소행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이는 손님이 아니다. 아이도 이 집의 구성원이요, 주인이다. 따라서 책임을 져도 같이 져야 한다. 부모는 어려워 죽을 지경인데 아이만 편히 모신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함께 걱정해야 한다. 형편이 어려운 것도 솔직히 이야기해야 한다. 생계가 어려우면 함께 팔 걷고 나서게 해야 한다.

 

그러다 상처라도 받으면? 그런 소심증은 버려라. 그 정도 상처는 받고 자라는 게 더 강해질 수 있다. 그런 아이로 키워야 한다. 함께 노력하여 가족 생계를 돕고 제 학비를 벌어 쓰는 바로 그 과정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교육이다. 가족을 위하는 마음,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절로 우러날 것이다. 이보다 더 값진 교육이, 그리고 값진 수확이 또 어디 있겠는가. 가족과의 연대감, 서로를 위하고 아끼며 격려하는 사이 서로에 대한 책임감도 커져갈 것이다.

 

참고 : 엄마, 그렇게 키워선 안 됩니다

 

 

이시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고문
경북대학교 의학 학사
예일대학교 대학원 신경정신과학 박사
세로토닌 문화 원장, 힐리언스 선마을 촌장, 한국자연의학종합연구원 원장
정신의학신문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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