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두 해 동안 <미움 받을 용기>라는 책이 큰 인기를 얻었다. 비록 이 책을 독파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또 아들러 심리학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 책의 제목을 듣는 순간, ‘그래, 미움 좀 받을 수도 있지 뭐. 너무 다른 사람 신경 쓰지 말고 살자’ 하는 일종의 깨달음 같은 울림을 많은 사람들이 느꼈을 것이다. 복잡해진 인간관계에서, 요즘에는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세상에서까지도 우리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고 너덜너덜해져 고꾸라지거나, 상처받지 않기 위해 눈치를 보고 불안해하고 전전긍긍해한다. 지금의 이런 우리에게 ‘미움 받을 용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챙길 수 있도록 하는 위안을 준다. ‘미움 받을 용기’는 정말 이 시대의 안성맞춤인 메시지 같다. 하지만 어떤 때에는 용기만으로 다 채우기 힘든 또 다른 경우들도 있다.

 

사진 픽사베이

다음의 사례를 만나보자.

A씨는 매우 씩씩한 직장맘이다. 두 아이도 능숙하게 잘 키우고 직장에서도 에너지가 넘친다. 일정 부분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살림도 잘 한다고 소문이 나 있다. 그런 그녀가 초췌해진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다. “최근에 둘째 아이가 독감에 걸려 입원을 하게 되면서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었어요. 큰 아이 돌보기도 어렵고, 직장에서는 허둥대고, 시댁 대소사를 챙기지 못하고 남편 뒤치다꺼리는 엄두도 못 내요. 하지만 누구하나 도와주지 않으면서 오히려 타박을 해요. 어떻게 했기에 독감이 걸렸냐느니, 애 좀 아프다고 집안 꼴이 이게 뭐냐느니, 아무리 경황이 없어도 중요한 일을 못 챙기면 어쩌냐느니. 심지어 남편은 이런 말까지 하더군요. ‘당신이 한 게 뭐가 있다고’.” 축 쳐져있던 그녀가 진료면담에서 “그 동안 많이 힘들었겠습니다.”라는 나의 한마디에 급기야 굵은 눈물을 쏟아 내었다. 그리고는 이 말을 이었다. “전 그냥 누군가에게든 그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아요.”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는 “관종”이라는 말이 자주 쓰인다. 관종은 관심종자라는 비속어의 줄임말이다. 다른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으로 관심을 받는 사람들을 일컫는데, 그 행동이 관심을 받기 위해 시작된 것인지, 그런 행동을 하다 보니 관심을 받게 된 것인지는 구분하지 않는 것 같다. 과한 부정적 행동과 이로 인해 주목받게 된 상황이면 싸잡아서 관종이라고 표현한다. 어린 학생들이 그런 관종의 행동에 대해 정말 관심 받고자 한 행동이었는지, 왜 관심을 받고자하는지, 관심 받고 싶은 마음의 근원은 어딘지를 살피기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 무리일 것이다. 자기 주변 사람의 부정적 행동을 경계하고 거부적으로 대하는 것이야 당연하다, 하지만 “관심”을 받고자 하는 욕구 자체가 부정적으로 인식될까봐 걱정되는 마음이 든다. 타인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마음 자체가 정말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정신건강의학과적 영역에서도 타인의 인정에 집착하는 환자군이 있다. 자기애적 인격장애나 히스테리성 인격장애 환자는 타인의 관심과 인정을 받기 위해 부단히 신경을 쓴다. 자기애적 인격장애는 스스로를 매우 특별하게 생각하는 도취적 자기상을 가지며, 그에 따른 특별한 인정과 존경을 요구하고, 공감적이지 못하고 오만한 태도를 보인다. 기대하는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몹시 기분 나빠 한다. 히스테리성 인격장애 역시 타인의 관심과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을 매우 불편해하고, 관심을 받기 위해 극적이고 과장된 감정표현을 하며, 때때로는 부적절하게 유혹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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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관종도, 앞서 언급된 인격장애 환자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인정받기 위해 일을 시작한 것도 아니고 인정받는 것이 지상 최대의 목표는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는 인정받고 싶다. 정신없이 아이들을 유치원과 학교에 보내고, 전쟁터 같은 직장에서 온갖 스트레스를 뒤집어쓰고, 지친 몸으로 돌아와 산적한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 과제를 봐주고, 주말에는 나보다는 가족을 위한 나들이나 여행, 집안 문안 인사 등으로 만신창이가 된다. 따뜻한 말 한마디 없이 그런 고생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어쩌다 부족한 대접에 “당신이 한 게 뭐 있어?”라는 말이라도 듣게 된다면 미치기 일보 직전이 될 것이다. “그 동안 많이 힘들었지?”라는 진정한 그 한마디가 듣고 싶다. 참으로 인정받고 싶고 공감 받고 싶다.

 

현대정신분석학의 큰 흐름인 자기심리학의 창시자 하인츠 코헛은 이렇게 말한다.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는 우리 모두에게 존재하며 이를 무시하는 것은 산소의 존재나 필요성을 무시하는 것이다.” 코헛의 말처럼 우리가 받고자 하는 인정은 우리가 숨 쉬는 산소의 존재로 비유될 만큼 필수적이다. 코헛은 ‘(남이지만) 마치 자기처럼 자기를 바라봐주고, 경청해주고, 미소지어 주고, 이해해주고, 인정해주고, 공감해주고, 여러 심리적 기능을 충족시켜주는 대상을 자기대상’이라고 했고, 사람은 이런 자기대상의 돌봄과 관계 속에서 성숙한 자기로 성장할 수 있다고 했다. 자기대상은 생의 초기에는 주로는 어머니나 양육자를 의미한다. 자기대상이 생의 초기 단계인 영유아 시절에 특히나 더 중요한 건 사실이지만, 우리에게 인정은 필수적이기에 이런 자기대상은 어린 시절뿐만 아니라 일생동안 항상 꼭 필요하며 심리적으로 건강한 성인도 자기대상의 반영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고 한다.

 

우리는 인정받아야 하고 이를 인정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지금 내 곁에 자기대상같은 그런 존재가 있다면 참 다행이다. 포근히 안기고 공감 받으며 재충전해보자. 하지만 그런 대상이 내 옆에 없다면 찾아나서야 하지 않을까? 어릴 적 자기대상과의 관계는 일방적으로 수혜 받는 방식이었지만 성인에서의 자기대상관계는 좀 더 능동적이고 상호적이다. 우정, 사랑, 결혼과 양육, 창조적, 예술적 활동은 성인 자기대상관계의 변형된 형태들이다. 먼저 다가가고 먼저 마음을 열어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 조금만 나에게 시간을 내어 자신이 좋아하는 책이나 그림이나, 영화, 연극 등에서 즐거움과 위로를 받는 것도 좋겠다.

 

하나 더 기억하자. 나에게 나를 인정해주고 공감해주는 나의 자기대상이 필요한 것처럼, 누군가는 나의 인정과 공감을 필요로 할 것이다. 나는 누군가의 또 다른 자기대상이 되어 주어야 한다. 내가 인정받고 싶은 만큼 다른 사람을 인정해 주고 공감해주자. 특히 부모라고 한다면 자녀에게 좋은 자기대상이 되어 자녀를 바라봐주고 이해해주고 공감해주고 인정해주자. 앞서 인용되었던 자기대상관계에서 양육자가 적절한 자기대상 기능을 제공하지 못하면, 그 자녀는 인정 욕구에 대한 목마름으로 끊임없이 인정과 관심을 찾아 헤매는 자기애적 증상을 보이거나 관종이 될 수도 있다.

 

우리에게는 미움 받을 용기도 필요하지만, 적어도 그 만큼의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인정받음도 필요하다. 글의 제목에서 했던 질문의 대답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인정받고 싶은 당신, 지극히 정상이며, 인정받아 마땅합니다.

 

 

박기홍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아이나래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전북대학교 의과대학 및 동대학원 졸업, 신경정신과 전공의 수료
서울대학교병원 소아정신과 임상강사 역임
서울시교육청 특별상담 전문의 역임, 도립 마음사랑병원 진료과장 역임
군산시정신보건센터 상담전문의, 전라북도 청소년정신건강증진 위원, 청소년상담지원센터 협력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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