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나를 죽이지 않는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라고 말한 니체의 명언이 있다. 그 어떤 고통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정말로 나를 죽이지만 않는다면, 아직 살아있기만 하다면 그 고통으로 인해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세기말의 쇼크록 가수 마릴린 맨슨은 노래에서 "나를 죽이지 않는 고통은, 나에게 흉터를 남길뿐이다(Leave a scar)"라며 니체를 비꼬았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다크나이트'의 악역 조커 또한 은행을 폭파시키며 "나를 죽이지 않는 고통은, 나를 더욱 괴상하게 만들지(makes me stranger)"라며 니체의 초월적 성장을 조롱했다.

실제로 몇몇 환자들은 우울증이라는 고통을 경험하면서 니체보다는 맨슨이나 조커의 비딱한 시선에 더 공감하곤 한다. 우울증은 때때로 후유증을 남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울증이 이미 마음속에 새겨버린 상처는 생각보다 쉽사리 지워지지 않을 수 있다. 잔여 우울의 흔적은 흉터처럼 일상에 남을 수 있다.

 

우울증은 무척 다양한 경과를 가진다. 치료하지 않아도 수개월만에 좋아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치료하더라도 충분히 좋아지지 않고 만성적인 증상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급성 우울증상이 치료되고 난 이후에도 일종의 후유증과 같은 증상이 남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좋아졌지만 더 이상 좋아지지 않는, 어느 순간 치료에 반응이 더뎌지기 시작하는, 우울을 벗고자 하는 노력이 답보하기 시작하는 그런 순간이 올 수 있다. 

 

얼마 전, 미국의학협회 저널에 실린 연구(Z.V.Segal, 2020)에 따르면, 온라인을 통한 명상 기반의 인지치료가 이러한 우울증의 후유장애 개선에 상당히 효과적일 수 있다고 한다. 46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이번 연구에서는, 일반적인 우울증 치료에 비해 명상 인지치료를 함께한 경우에 일상생활의 개선에 훨씬 더 나은 경과를 보였다.

명상적 기법을 도입한 인지치료, 즉 명상기반인지치료(Mindfullness Based Cognitive Behavioral Therapy)는 이미 널리 알려진 우울증의 치료법 중 하나로, 그 효과가 충분히 검증되어 온 바 있다. 우울 후유증의 관리에 있어서도 명상 기반 인지치료는 이미 많은 의료시설에서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에 더해 이번 연구에서는 이러한 명상기반인지치료가 온라인을 통해 다수의 사람들에게 제공될 경우에도 충분한 효과를 보일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아시아의 오래된 자기수련법인 명상이 어떻게 이렇게 전 세계의 현대 의학을 사로잡고 있는 것일까. 그것도 디지털 정신건강의 첨단과 함께 맞물리면서 말이다. 
 

사진_픽셀


명상이라고 하면,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뭔가 거창해 보이는 면이 있다. 가부좌를 틀고 불상처럼 거룩하게 앉아 알 수 없는 신비의 세계로 빠져드는 모습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마치 곧 공중부양이라도 할 것만 기인(奇人)의 모습이나, 동굴에서 면벽 수도를 하는 도인(道人)의 모습을 연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명상은 배우기 무척 어려운, 수도자들만의 심오한 작업이 아니다. 깊은 산속 고승을 찾아가야만 배울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위의 연구에서 명상기반치료를 인터넷 영상과 음성을 통해 실시하였듯, 명상을 일상 속에서 배우고 실천하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다. 방해받지 않을 편안한 공간과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는 환경, 그리고 간단한 안내를 통해서라면 얼마든지 집에서도 쉽게 연습할 수 있다. 실제로 인터넷이나 CD 파일을 통해 명상을 훈련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우리나라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명상의 목적은 결코 어떤 신비함이나 거룩함에 있지 않다. 사실 명상은 오히려 그런 뜬구름 속 세상과 정 반대편에 있다. 명상이야말로 지금 여기, 현실과 가장 가깝게 밀착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명상은 '현재에 집중'하는 훈련이다.

부처는 모든 고뇌가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에 있거나,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있을 뿐이라고 이야기하였다. 과거와 미래를 향한 집착이 아니라, 오직 현재를 살아갈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번뇌를 벗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였다. 

우리들 대부분은 사실 매 순간 머릿속을 스쳐가는 수많은 생각과 감정들을 일일이 알아차리지 못한 채로 살아간다. 이는 마치 우리가 매 순간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의 감각을 잊고 살아가는 것과 같다. 우리는 옷을 입고 있으면서도, 살갗을 스치는 옷깃의 감각을 잊고 지내고 있지 않던가. 명상은 이러한 순간순간의 감각, 잊고 있지만 분명 매 순간의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일상적인 감각들을 알아차리는 훈련이다.

 

연구에서 사용된 명상기반인지치료 역시 현재에 집중하는 법을 연습하는 치료법이다. 연구자들은 우울증의 후유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머릿속에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부정적 생각, 습관적인 부정적 인지 패턴을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도록 가르쳤다. 

현재를 붙들기 위해 호흡에 집중하고, 감각에 집중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나의 마음에 집중한다. 잊고 지내던 감각을 알아차리듯, 자동적으로 지나가던 머릿속의 생각들도 알아차리고자 노력한다.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던 생각-감정-행동의 패턴을 그때그때 알아차리는 명상을 활용해 부정적으로 왜곡된 생각의 패턴을 다시 한번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어쩌면 정말로 조커의 농담이나 마릴린 맨슨의 파괴적인 가사가 현실에 가까운 말일지도 모른다. 고통이 우리를 죽이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분명 흉터를 남길 수는 있다. 우울증 또한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 후유증은 곧 고통의 흔적이다. 지나가버린 과거는 우리에게 아픈 흔적을 남기고, 그 흔적은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왜곡된 렌즈로 굴절시킨다. 아팠던 과거가 나의 미래를 좌절로 이끌어내리는 악순환의 패턴이야말로 사라지지 않는 우울 후유증의 원동력이다.

니체는 그 고통에서 우리가 새로 태어나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 고통을 통해 새로운 초인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성장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너무 가혹하다. 이미 뼈아픈 상처에 지쳐버린 마음에게 니체의 회초리는 너무나 비현실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대신 부처는 그것을 고요히 들여다보라 이야기한다. 고통이 남긴 흉터(Scar)에 점점 이상해져(Stranger) 가고 있는 스스로의 굴레를 알아차리고 바라볼 수 있으라 한다.

벗어나려 헛되이 발버둥 치기보다, 아파하며 신음하며 좌절하기보다, 굴레에 갇힌 스스로를 가만히 응시할 때에, 그때에 우리는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한다.

명상하라.

 

후유증은 일상 곳곳에 녹아 있다. 따라서 후유증을 다루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의학치료를 뛰어넘는, 생활에 기반한 자기 단련과 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울증 후유증 치료에 있어서도, 일상의 마인드 컨트롤에 있어서도, 인터넷 기반의 명상 훈련이야말로 어쩌면 디지털 언택트 시대에 가장 적합한 치료법이자 마음수련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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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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