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권용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직장인에게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 줄임말)은 현재진행형의 이슈입니다. 일과 삶의 균형은 간단해 보이지만, 현실을 생각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글을 쓰면서도 직장인의 생활을 생각해보면 워라밸이 '일부의 이야기, 남의 이야기, 그림의 떡' 이런 것임을 알기에 답답한 마음입니다. 그렇다고 워라밸을 포기하거나 왜곡된 방향으로 바라보기보다, 어렵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해서 접근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겠습니다.
 


일과 삶의 균형은 그림에서와 같이 양쪽이 동등한 상태로 맞출 때가 이상적이겠지요(물론 삶 쪽의 균형이 크면 더욱 좋겠지만...). 균형을 맞추는데 개인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그 외 영역의 비중이 큰 것이 사실입니다. 많은 문헌에서도 워라밸을 위해서는 직장, 사회의 시스템 변화를 중요한 요소로 꼽고 있기도 하고요. 우리 개인이 바꿀 수 없는 것들인데 대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는 것일까요?

 

개인이 할 수 없는 것

현실을 바라보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필요한 것은 리더가 바뀌는 것이고, 직장의 문화가 바뀌는 것이며, 나아가 사회가 바뀌어야 가능한 문제들입니다. 아주 다양한 해결책과 권고안들이 나와있습니다.

법정휴가의 충분한 사용, 고액 연봉 및 직원 복지의 확대, 지지적 업무 분위기 조성, 상호 보완적 분위기의 팀워크 만들기를 포함한 이상적인 방법부터, 유연근무제와 같은 현실적 것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구조나 직장분위기가 바뀌더라도 반드시 워라밸이 달성된다고 보기에는 힘들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실제 미국 IBM에서 재택근무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재택근무가 직장인에게 긍정적 영향도 있지만 항상 일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좋지 않다고 한 결과가 적지 않아, 이 같은 것들도 뚜렷한 해결책이라 하기에는 어렵습니다. 

 

개인이 할 수 있는 것

1. 우선 균형 잡기의 개념을 새로이

몸은 체온, 혈압 등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자동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항상성(homeostasis)이라는 개념입니다. 항상성은 단순히 균형 잡힌 상태를 위한 것보다 변화하는 내외부 자극(스트레스)에 잘 적응하기 위한 대응 시스템입니다. 예를 들어, 혈당이 떨어질 때 올리려고 하고, 올라갈 때 내리려고 하는 시스템이 잘 작동해야 신체가 건강하다 말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일과 삶의 균형, 워라밸의 경우도 균형 잡힌 상태 그 자체보다도, 잘 맞지 않는 균형을 맞추려고 하는 방향성과 이를 위한 노력, 행동이 의미가 있습니다. 일이나 삶 어느 한쪽의 무게가 많아질 때  회복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는 에너지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며, 그것이 건강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포기하는 것 배우기

균형을 잡으려는 에너지가 있다면 이것을 적절히(올바른 방향에) 사용해야 합니다. 워라밸에 필요한 것을 쉽게 생각하면 월급 많이 받고, 근무시간 줄이고, 상사가 괴롭히지 않으면 좋아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며, 여기에 초점을 맞추면 오히려 무력감이 늘고, 만족도가 줄 수밖에 없습니다. 바꿀 수 없는 부분이 아니라 할 수 있지만 포기해야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포기하는 것은 서로 맞서는 갈등, 의무, 책임, 목표 이런 것의 균형을 잡기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어떤 것을 취하고 포기하는 것은 내가 선택하고, 그 결과의 책임도 지게 됩니다. 그래서 포기하는 것은 고통스럽고, 겁나고, 무서운 경험일 수 있지요. 하지만 균형을 잡지 못해 생기는 고통이 포기하는 것보다 큰 고통을 초래한다면 반드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3. 완벽주의, 조금만 적당히 하기

문헌과 여러 매체에서도 워라밸을 위해 완벽주의를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이것은 포기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하는 내용이기도 하지요. 완벽주의를 버린다기보다 효율적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완벽하게 해야 할 것과 그렇지 않아도 될 것을 구분해서 적용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할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업무는 물론, 휴식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퇴근 후, 주말, 휴가 때 평소 하지 못했던 재미있고 즐거운 것을 하려고 하는 것은 좋으나 균형의 측면에서 본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말 그대로 쉬는 것이 휴식의 의미로 더 적합하겠습니다. 쉬는 날도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당장의 기분 좋은 만족감은 있겠지만, 일에서의 균형이 무너져버리기 쉽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4. 일에 몰입해보자

"일이 재미가 없으니 몰입할 수가 있나요."
"시간이 없어 쉬지를 못하니, 일할 에너지가 없어요."

재미있는 업무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일은 원래 재미없고, 따분하며, 고통을 수반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이 워라밸, 균형을 맞추는 것이라면 일에도 몰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몰입하게 되면 시간이 금방 지나가는 경험을 하기도 하며, 잔업에 대한 부담이 줄어드는 등 현실적으로 일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줄일 수 있습니다. 스스로 일을 하면서 자율성과 일에 대한 조절감이 생기기도 하는데 자율성에 대한 인식도 몰입하는 근로자에게 더 높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참고로 몰입하는 직장인의 특징은 이렇습니다.

- 직장에서 자신에게 기대되는 바를 알고 있다.
-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갖추고 있다.
- 일에서 나의 영향력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찾는다.
- 동료와 함께 중요한 무언가의 일부가 되었다고 인식한다.
- 성장과 발전의 기회를 갖는다. 
(실력을 쌓고, 지속적으로 자신의 전문성과 역량을 발전시켜야 하며 이를 강조하고 보상받아야 한다.)
 

5. 균형 잡기에 쓰이는 에너지 관리를 적극적으로 하자

균형을 이루기 위해 소모되는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가 다른 것들로 인해 떨어진다면 이를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나친 업무로 인한 소진 상태(exhausted state)나 사람들 사이에서 겪는 스트레스와 같은 것부터 우울증, 불안장애와 같은 질병들이 에너지를 떨어뜨리거나 방해하는 것들입니다. 특히 정신적 질병이 생겼거나 악화되었을 경우, 스스로 해결하는 것도 좋지만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약물치료가 필요한 경우 스스로 환자라거나 문제가 있다고 부정적으로 보기보다 내가 대처하지 못하는 부분만큼만 치료를 통해 개선한다는 식의 접근이 바람직합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데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일과 삶의 균형을 찾고자 하는, 나아가 일에 몰입하고자 하는 동기가 정말 강력한 것이라면 끊임없이 에너지를 공급받게 될 것입니다.

 

* 참고

행복한 직장의 조건. 하나출판사. 신영철 외 직장정신건강연구회.(Workplace Well-being)

 

권용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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