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실제 상담 내용을 재가공하여 구성한 내용입니다. 내담자의 동의를 얻어 작성되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실제 상담과 비교해 설명을 많이 덧붙였습니다. 실제 상담의 흐름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점 미리 밝힙니다.)

 

내담자: 안녕하세요. 저는 24살 여성입니다. 현재 취업준비생입니다. 요즘 우울하고 무기력하고 답답한 기분이 많이 드는 것 같아요. 지금 상황은 무언가를 열심히 해야 하는 상황인 건 아는데, 제 마음처럼 그렇게 되지가 않아요. 뭔가를 안 하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또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에요.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 같아 답답한 마음이 듭니다. 엄마도 옆에서 계속 ‘언제 취직할 거냐’며 재촉을 하시는데, 정말 짜증만 나고 아무런 도움이 되지가 않아요. 그래서 집에 있는 게 너무 스트레스에요.

진짜 돈만 생기면 빨리 집에서 나가고 싶어요. 돈이 생기려면 취직을 해야겠죠. 그런데 제가 뭘 원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뭘 잘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자소서를 쓰려고 해도 이게 다 거짓말 같고, 그렇다고 솔직히 쓰려고 하니까 쓸 내용도 없고, 자소서를 쓰는 것도 제게는 너무 스트레스에요. 세상이 너무 웃긴 거 같아요. 자소서가 자소서가 아니라 자소설이라는 걸 모두가 아는데 그걸로 평가를 하고 채용을 한다는 게 너무 웃긴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나를 속여 가며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다른 사람들은 대단한 거 같아요. 어떻게 그렇게 자신을 속여가면서까지 그렇게 할 수가 있는지. 다 돈 때문이겠죠. 저는 돈이랑 상관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엄마가 옆에서 너무 ‘돈, 돈, 돈’ 그러니까 그것도 너무 짜증이 나요. 그깟 돈 좀 없으면 어때요. 돈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게 더 스트레스인 거 같아요. 저는 엄마처럼 안 살 거에요.

요즘은 모든 게 부정적으로 보이는 거 같아요. 내가 아는 세상이 별로 좋은 세상이 아닌데 굳이 뭘 열심히 해야 하나 라는 생각도 많이 들어요. 세상 자체가 아름답거나 좋은 거 같지가 않아요. 다들 돈만 좇고 서로 경쟁하고 밟고 올라서고 서로 싸우고... 어차피 사회가 이런데 거기서 제가 뭘 어떻게 하겠어요.

요즘 여혐, 남혐 관련된 글도 많이 올라오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남자에 대한 불신, 혐오감도 쉽게 생기는 거 같아요. 제가 외모에 신경을 쓰는 것도 거기에 굴복하는 거 같아서 싫은 느낌도 들어요. 얼마 전에는 살인 사건도 있어서 밖에 나가는 것도 무섭고, 사회 자체가 희망적이지가 않은데 그 안에서 제가 뭘 찾고 추구해야 하나 라는 회의감이 드는 거 같아요. 저는 아름다운 사회를 보고 싶은데...
 

사진_픽사베이


상담자: 부정적인 사회이기를 바라는 거 같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내담자: 저만 그런 것도 아니에요. 친구들이 모여도 항상 부정적인 이야기들만 해요. ‘어차피 희망적으로 살기는 글러먹은 세상인데, 열심히 해서 뭐하나’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해요. 뉴스를 봐도 좋은 내용의 기사보다는 안 좋은 내용의 기사만 눈에 들어와요. 서로 헐뜯는 기사들을 보고 있으면 저도 스트레스를 받고, 안 봐야지 하는데 그런 기사들만 자꾸 눈에 들어오는 거 같아요. 저도 긍정적이게 변하려고 노력은 하는데 항상 일시적인 거 같아요. 일상에 돌아오면 안 좋고 부정적인 것만 자꾸 들어오고.


상담자: 긍정적이게 변하려고 노력을 하신다고 하셨어요. 노력을 해도 일시적이라고 하셨고요. 왜 그런 거 같나요?

내담자: 습관이 된 거 같아요.

상담자: 왜 습관이 되었을까요?

내담자: 그게 편해진 거 같아요.

상담자: 왜 편해졌을까요?

내담자: 친구들 때문에 그런 거 같아요. 친구들이랑 그런 이야기만 하다 보니까...


상담자: 제가 아까 OOO 씨가 ‘부정적인 사회이기를 바라는 것 같다’고 말씀을 드렸는데요. 사회가 부정적이어야만 OOO 씨 마음이 편해지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의식적으로는 아름다운 사회를 보고 싶다고 하셨고, 나쁜 것만 보니까 스트레스를 받는다고는 하셨지만, 무의식적으로는 오히려 사회가 부정적이기를 바라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왜 그럴까요? OOO 씨는 현재 취업준비생이고, 현재 힘든 상황에 놓여 있잖아요. 아직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도 않고 있고요. 이런 상황에서 세상이 아름답고 괜찮기만 하면 어떻게 될까요? 이런 상황의 원인이 세상이 아니게 되면 결국 내 책임이 되는 거잖아요. 내가 별로인 사람이 되어버리는 거에요. 무의식적으로는 ‘나’를 보호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세상이 부정적이면 이 모든 것들이 내 책임이 아니라, 사회의 책임으로 돌릴 수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OOO 씨는 세상이 부정적이어야만 해요.

물론 세상에는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 공존하고 있어요. 저도 세상이 긍정적이기만 하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아요. 저는 세상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OOO 씨는 그런 측면에서 부정적으로 ‘편향’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본인도 그렇게 말씀을 하셨죠. 좋은 내용의 기사보다는 안 좋은 내용의 기사, 서로 헐뜯는 내용들이 눈에 더 잘 들어온다고요. 무의식은 ‘세상이 부정적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바라고 있을지도 몰라요.

이 부분은 또 다른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어요. 제가 ‘내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유’ 중 첫 번째 이유(1~5번째 연재 참조)로 언급했던 것이 기억이 나시나요? ‘애초에 할 수 없는 걸 원하기 때문에, 내 인생인데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거다.’라고 말씀을 드렸었죠. 그리고 “주어를 ‘나’로 바꾸는 연습을 해라. 주어가 ‘나’가 아닌 바람들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말씀을 드렸었죠. 문제의 원인을 사회로 돌리면 그건 주어가 ‘나’가 아니에요. 그 말은 할 수 없는 바람이라는 뜻이고요. 할 수 없는 것을 바라고 있으니, 될 리가 없고, 그러니까 무기력에 빠지고 답답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은 보통 할 수 있을 만한 일을 할 때는 무기력에 빠지지 않아요. 할 수 없는 일을 가지고 애를 쓰고 있을 때 무기력에 빠지는 거죠.
 

사진_픽셀


그렇다면, ‘사회’를 바꾸는 게 쉬울까요? ‘나’를 바꾸는 게 쉬울까요? 아시는 거 같네요. 모든 것의 출발은 ‘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렇다고 사회를 바꾸지 말자는 뜻은 아니에요. 저도 사회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만약 그 바람을 가지신다면, 사회 탓만 할 게 아니라, ‘사회’를 바꾸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으셔야 해요. 이게 주어를 ‘나’로 바꾸는 연습이에요. “‘사회’가 이렇게 되어야만 해.”가 아니라, “‘사회’가 이렇게 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로 바꾸어야 해요. 왜냐? 앞 문장은 ‘할 수 없는 바람’이라면, 뒷 문장은 ‘할 수 있는 바람’이기 때문이에요.

OOO 씨가 정말 바라는 사회의 모습이 있다면, 그 일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르거나,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연대해서 힘을 만드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해요. 그러한 행동을 옮기지 않고, 사회 탓만 하는 것은 핑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어요. 내가 푸념하면서 에너지만 쓰고 있을 뿐이지 바뀌는 게 없기 때문이에요. 정말로 바뀌기를 원한다면 행동이 동반되어야 해요. 행동이 동반되지 않는 말은 핑계일 가능성이 높아요.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인지, 아니면 핑계에 불과한 것인지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그 바람과 관련된 행동을 취하고 있느냐의 유무’를 확인하는 거에요. 세상에서 가장 공허한 것이 ‘말뿐’인 거에요. 정말 사회가 부정적이고 바뀌어야 할 게 많다는 생각이 나의 진정한 바람이라면, 그에 맞게 해 나갈 수 있는 방법들을 찾고 행동으로 옮기시면 돼요. 그게 어려운 길이라고 느껴지신다면 주어진 환경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찾으셔야 해요.

그냥 쉽게 ‘말만 하면서 사회를 바꾸고 싶어.’라고 하신다면, 그건 명확한 거 같아요. 그건 명백히 할 수 없는 일이에요. 할 수 없는 바람들만 내 안에 가득하면 내 인생은 살던 대로 살아가‘질’ 수밖에 없거든요. 애초에 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내 인생인데도 불구하고 내 마음대로 되지가 않으셨던 거였거든요.

사실 저를 찾아오신 것도 살던 대로 살아가‘지는’ 것에서 벗어나 다른 삶을 살고 싶기 때문에 먼 길을 오신 거잖아요. 그러려면 ‘내 바람’은 ‘할 수 있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셔야 해요. 그러면 바뀌는 것들이 조금씩 생길 거에요. ‘할 수’ 있는 것들이니까요. 그게 주체적인 삶이고, 내 인생이므로 내 뜻대로 사는 삶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해나가다 보면 사회가 바뀌어가는 지점과도 접하게 되리라 생각해요.

 

추신: 상담을 하다가 문득 떠오른 영화의 장면이 있어 덧붙여 봅니다. 사실 영화의 제목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요. 누군가 알려주시면 정말 감사할 거 같습니다. 미국 대공황 시절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였는데요, 가장들이 모두 실직자가 되고, 집에 먹을 게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가장들은 어떻게든 일을 구해보려고 인력 시장에 나가고, 배우자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먹을 게 부족해서 아이들이 굶고 있는 상황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들을 서로 나누고 있었는데요. 그 상황에서 한 부인이 이런 이야기를 했던 게 인상에 깊었습니다. “이렇게 우리 아이들이 굶고 있는 게 우리 남편의 책임일까요? 경제 대공황 시절에 태어난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겠지요. 과연 남편 탓을 할 수 있을까요? 남편이 만약 경제가 호황인 다른 시절에 태어났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지 않았을까요? 사회가 그런 걸 남편에게만 책임을 돌리는 건 너무 가혹한 거 같습니다.”

오래전에 봤던 장면인데 아직까지 기억에 있는 거 보면 제게는 무척 인상에 깊었던 거 같습니다. 그리고 취업준비생과 상담을 하다 보니, 그 부인과 비슷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명 우리 부모 세대랑 비교했을 때 시간이 갈수록 취업이 어려운 상황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것을 취업준비생 본인에게만 책임을 돌리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닐까요? 이 세상의 취준생들이 몇십 년만 일찍 태어났었어도 이렇게 취준생으로서 어려운 환경에 놓이지는 않지 않았을까요?

그럼에도 상담 과정에서 ‘사회 탓’을 하지 말라고 했던 것은, 사회의 책임이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책임 유무와 관계없이, ‘할 수 없는 바람’들은 스스로를 힘들게만 하지, 바뀌는 게 없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연재에서 말씀을 드렸던, ‘전기밥솥’ 상황과 유사한 거지요. ‘전기밥솥’에 밥이 빨리 되기를 아무리 바라봤자 용만 쓸 뿐이지, 밥이 되는 속도에는 변화가 없고 나만 지친다는 것입니다. 내담자가 무기력에 빠지지 않고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쓰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제 마음이 오롯이 전달되었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 모든 취준생 분들께 응원의 말도 함께 전합니다.

 

※ 본 글은 이일준 정신과 전문의가 Transmind 마음변화 연구소에서 무료 상담했던 내용을 각색한 글입니다.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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